오래전부터 '언젠가는 읽어야지'하고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고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제목만큼은 너무나 익숙했지만, 막상 책을 읽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비극인 듯 보이지만 웃음을 주고, 희극인 듯하지만 묘한 허무감이 남는 작품, 유쾌한 허무주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고도를 기다리며> 책 리뷰입니다.
목차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저자 사뮈엘 베케트 / 오증자 옮김
발행 2012년 2월 / 민음사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통적인 사실주의극에 반기를 든 전후 부조리극'으로 흔히 설명됩니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했으며, 이 작품을 프랑스어로 먼저 집필한 뒤 영어로 다시 썼다고 합니다. 민음사의 번역본은 프랑스어를 번역한 것이고요. 사뮈엘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2년 책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곧 연극으로 상연되었습니다. 초연은 1953년 1월 프랑스 파리의 소극장이었고요. 당초 한 달 정도의 짧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관객들의 호흥을 얻으며 장기 공연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국내에서는 가장 최근에 공연된 신구, 박근형이 출연한 연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도의 뜻과 의미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고도'는 뭔가 높은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만들 때 한자어로 만든 단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이 책을 읽으면서는 주인공들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설정으로 되어있어서 단순히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했었고요. <고도를 기다리며>의 프랑스어 제목은 <En attendant Godot>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고도'라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고 그저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린다는 내용만 나올뿐입니다.

재미있는 건 미국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될 당시, 연출자가 사뮈엘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고도(Godot)'는 책을 읽고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정의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그래서 '고도'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로 신, 하느님을 뜻하는 Dieu를 하나로 합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이 있고요. 또 자유, 빵, 희망 등을 의미한다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고 하죠.
베케트가 책 속에 '고도'를 특정하지 않은 것은 독자나 관객들에게 무한히 상상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닐까 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등장인물
✅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긴 기다림에 지쳐가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봅니다. 서로 질문하기, 말 되받기, 욕하기, 운동(체조)하기, 포조와 럭키 흉내내기 등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 - 1막과 2막에 등장하여 온갖 희한한 상황을 만듭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덕분에(?) 조금은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 소년 -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입니다. 이 소년은 1막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여 오늘 밤에는 오지 못하고 내일은 꼭 오겠다는 고도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2막의 끝 부분에 등장하여 어제의 일을 똑같이 반복합니다.

유쾌한 허무주의 - 고전문학 <고도를 기다리며>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립니다. 그들의 기다림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저 고도를 기다릴 뿐. 그러다 그들은 포조와 럭키라는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소년으로부터 내일 오겠다는 고도의 전갈도 받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내용은 이게 다라고 볼 수 있어요. 등장인물들 사이에 특별한 사건이나 어떤 연결고리도 없습니다. 그저 황당하고 이상한 대화가 이어지고 엉뚱한 행동만 하죠.
책을 읽으며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고도'라는 인물.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이름이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 속에 주기적으로 고도가 등장하거든요.
자꾸 잊어버리는 에스트라공이 말합니다. '가자.'
그러면 블라디미르가 답하죠. '가선 안 되지.'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희곡으로 된 글은 사실 읽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지문과 대사를 읽으며 그와 동시에 인물들의 동작을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글이 죽죽 읽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끊어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연극을 보진 않았지만 이 희곡이 연극으로 상연된다면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 충분히 그려집니다. 의미도 없이 별일 아닌 것에 매달리면서 허둥대는 등장인물들의 동작에 웃음 포인트가 있거든요.
유쾌한 허무주의,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비극인 듯하지만 웃음을 주고 희극인 듯 보이지만 묘한 허무감이 남거든요. 등장인물들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이 나지만 나타나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그들에게서 고통과 절망이 보이기도 하니까요.
정리하며 - 연극을 기대하며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 박서준과 원지안이 이경도와 서지우라는 인물로 나오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경도를 기다리며'인가.
주인공 이경도(박서준)가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 올린 연극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는데요. 연극 속 '고도'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인물이지만, 경도는 지우가 기다리면 그 자리에 반드시 나타나겠다는 둘 만의 의미가 담긴 연극이었습니다.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고 읽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읽지 못했던 책 <고도를 기다리며>.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를 보고서야 드디어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책을 읽었으니 이제 기회가 된다면 연극으로도 보고 싶네요. 배우들의 공연을 직접 보면서 기다림, 불안, 불확실성 등이 또다른 재미와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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